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의 발자취
벧전 2:21-25
서론:
고난과 고통은 인간 삶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질병, 핍박, 상실—이 모든 것이 우리를 때로는 좌절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고난을 단지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믿음의 여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전서는 핍박받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보내진 편지로,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소망을 붙들라고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난 중에 어떻게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 2장 21-25절은 그 답을 제시합니다.
-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 한다.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사, 이는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들이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γὰρ(가르, 왜냐하면)”
부당한 고난을 견뎌야 할 추가적인 근거를 제시한다(EGGNT).
“이를 위하여”
이런 이유로(BDAG)
20절의 문맥에서 보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20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그러나 시제로는 18-20절 전체의 순종과 인내에 대한 내용을 아우른다(EGGNT).
“부르심을 받다” – καλέω(칼레오, 부르다, 이름하다, 청하다, 칭하다), 직설법, 과거, 수동태, 2인칭, 복수
‘특별한 혜택이나 경험을 위해 선택하다’, 곧 부르다(BDAG).
선을 행하도록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고난을 의미한다고 할지라도요(NLT)
즉,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할 때 참음으로 견디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Alf, BNTC, EGT, ICC, IVP, NIBC, NIC, TH, TNTC, TG).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사, 이는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본을 남겨두시므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때문입니다” – ὅτι(호티)
인과적 접속사로, 앞서 언급한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유(근거)를 소개한다(EGGNT).
고난은 그리스도의 삶의 일부였으며 우리는 그를 본받도록 부름 받았다고 설명한다(TNTC).
“그리스도께서도”
일부 신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신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음을 나타낸다(BNTC, EGT, TG, WBC).
“너희를 위하여”
신자에게 주어지는 유익이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비롯된 구속이라는 것을 나타낸다(BNTC, EGT, IVP, NIBC, NIC, TG).
“고난을 받다” – πάσχω(파스코, 경험하다, 겪다, 고생하다), 직설법, 과거, 능동태, 3인칭 단수
고난을 당하다, 인내하다(BDAG).
고난은 이 서신 전체의 주제이며, 특히 이 구절은 이사야 53장의 고통받는 종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IVP), 그리고 베드로는 구속의 역할이 아니라 모범적인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죽으셨다’ 대신 ‘고난을 받으셨다’고 표현했다(WBC).
“본” – ὑπογραμμός(휘포그람모스, 모범), 명사, 남성, 단수, 대격
이 단어는 원래 본을 따라 그릴 때 사용하는 ‘밑그림’을 뜻하며, 여기서는 ‘행동의 본’을 의미한다(BDAG).
“자취” – ἴχνος(이크노스, 발자취, 발자국), 명사, 중성, 복수, 여격
신약성경에서 비유적 의미로만 사용되며, ‘누군가의 삶, 행위, 모범을 따르는 것’, 곧 본보기(EGGNT)을 의미합니다.
규범의 여격으로 따라야 할 어떤 기준을 나타낸다(Wallace, EGGNT).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은 단지 흉내내기나 모방이 아닌, 본질적인 연합과 동일시를 전제로 합니다.
“따르도록 하기 위하여”
목적을 위해 ‘ἵνα + 가정법’을 사용했습니다.
“따르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누군가를 모델로 삼다’, 곧 따르다(BDAG).
이는 예수님의 상황을 똑같이 되풀이하라는 뜻이 아니라, 부당한 고난에 대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를 본받으라는 의미이다(EGGNT).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당하시므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며, 의미 없는 고통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고난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는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성숙해지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셨고, 그 고난의 길을 통해 우리에게 따라올 본을 남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발자취는 편안함이나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희생과 순종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회피하려 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히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벧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받아야 한다.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사, 그분은 죄를 범하지 않았고 그분의 입에서 거짓(속임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22-24절에 나오는 네 개의 관계절 중 첫 번째이며, 선행사는 2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이다. 앞의 두 절은 그리스도의 흠 없는 성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뒤의 두 절은 그의 구속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EGGNT).
사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죄”
인간적 또는 신성한 정직함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BDAG)
“거짓” – δόλος(돌로스, 속임, 교활함, 간교, 거짓말), 명사, 남성, 단수, 주격
‘교묘하고 은밀한 방법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것’, 곧, 속임수, 교활함, 배신(BDAG)
“없으시며” – εὑρίσκω(휴리스코, 찾다, 만나다), 직설법, 과거, 수동태, 3인칭, 단수
‘의도적으로 검색하거나 우연히 발견하다’, 곧 찾다(BDAG).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품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사, 그분은 욕을 당하실 때 맞대어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 λοιδορέω(로이도레오, 욕하다, 욕설을 퍼붓다), 분사, 현재, 수동태, 남성, 단수, 주격, 상황 분사, 욕을 당하실 때
욕하다, 모욕하다, 비방하다(BDAG).
“맞대어 욕하다” – ἀντιλοιδορέω(안틸로이도레오, 욕하다, 욕설하다),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인칭, 단수
그리스도의 자제와 온유의 성품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사, 그분은 고난을 당하실 때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시되” – πάσχω(파스코, 경험하다, 겪다, 고생하다), 분사, 현재, 능동태, 남성, 단수, 주격, 상황 분사
사, 고난을 당하실 때
“위협하다” – ἀπειλέω(아페일레오, 위협하다, 경고하다),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인칭, 단수
위협하다, 경고하다(BDAG).
그리스도의 용서와 비폭력의 성품
마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사, 그러나 그분은 정직하게 심판하시는 분께 맡기고 계셨습니다.
“공의로” – δικαίως(디카이오스, 의롭게, 당연하게, 공의로), 부사
재판관의 사건 심리에 대해, 정직하게, 공정하게(BDAG)
의로운 자들의 의로움이 드러나고, 악이 폭로되는 유일한 소망은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심판자의 존재에 달려 있다(EGGNT).
“부탁하시며” – παραδιατριβή(파라디아트리베, 내어주다, 전하다),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인칭, 단수, 그는 맡기고 있었다
‘보살핌이나 보존을 위하여 맡기다’, 곧 넘기다, 위탁하다, 맡기다(BDAG).
그분은 자신의 소송을 심판하시는 분께 맡기셨습니다(BDAG).
이 문장에는 직접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은 ‘자신을’을 보충하고 있고, NLT는 ‘자신의 사건’을 추가하고 있다(EGGNT).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성품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복하지 않는 겸손한 성품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것은 단순히 행동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분의 성품을 닮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거짓이 없는 거룩한 삶을 사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이 모욕과 고난을 당하실 때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욕설과 채찍 앞에서도 침묵하시며, 모든 것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부당함을 당할 때 분노와 복수심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받는 자는 원수를 저주하기보다 축복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속의 본을 따라야 한다.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사, 그분께서 친히 우리 죄들을 짊어지셨습니다. 나무 위에서 자기 몸으로
“친히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사, 그분께서 친히 우리 죄들을 짊어지셨습니다.
“죄” – ἁμαρτία(하마르티아, 죄, 불법, 죄악), 명사, 여성, 복수, 대격
하나님의 뜻과 법에 반하는(어긋나는) 행동(LN)
“친히” – αὐτός(아우토스)
강조적 용법으로 사용되어, ‘스스로’을 의미한다(EGGNT).
“담당하셨으니” – ἀναφέρω(아나페로, 올라가다, 올리우다, 드리다, 담당하다), 직설법, 과거, 능동태, 3인칭, 단수, 그가 짊어지셨다
ἀνά(아나, 위로 + φέρω(페로, 지다) = 짊어지다
위로 운반하거나 짊어지다(LN).
희생 제물로 바치다(BDAG).
견뎌 내다(BSL)
기본적인 의미는 들어올리다, 바치다, 희생 제사 용어, 여기서는 사 53:12의 인용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짊어지셨다. 여기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일종의 제사 행위로 이해된다(EDNT).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어떻게 짊어지셨습니까?)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사, 나무 위에서 자기 몸으로(몸 안에서)
“나무”
십자가에 대한 은유법
이 단어는 신약에서 거의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전문적인 용어이다(EGGNT).
행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행 10: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몸”
죽음에 종속된 그리스도의 지상의 몸(BDAG)
‘자기 몸으로’는 예수님의 개인적인 고난의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ICC, IVP).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죄에 대하여 죽고”
죄에 대한 단절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심을 통해 회개와 거듭남으로 죄와 단절된 새로운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죽고’, 이 분사는 시간적 의미를 가지며, 의에 이르기 전에 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선행 행위를 전달한다(EGGNT).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의”
이생의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의로움이며, 이전 생활로부터 윤리적, 도덕적 변화를 의미한다(BNTC, ICC, NIC, NTC, TG, TH, TNTC, WBC).
‘ἵνα(히나) + 가정법(살다)’으로 목적을 나타냅니다.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 곧 단순히 구원받은 것을 넘어서, 거룩하게 변화된 존재로 살아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나타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사,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들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네 개의 관계절 중 마지막이다.
“채찍에 맞음으로”
사, 상처로
도구적 여격, 상처로 말미암아(ZG, Moule, EGGNT)를 의미합니다.
타격으로 인한 ‘부은 자국, 채찍 자국, 멍, 상처’(BDAG)
고대 문헌에서 이 단어는 폭력의 결과로 인한 부기나 상처를 묘사하며, 특히 채찍질이나 구타의 흔적을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53: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나 이 단어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채찍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전체 수난이나 고난을 나타내는 환유(제유)적 표현이다(Elliott, Dubis, EGGNT, BNTC, WBC).
당시 노예이거나 노예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상처는 자신들의 상처와 동일시되었을 것입니다.
“나음을 얻었나니” – ἰάομαι(이아오마이, 낫다, 고치다, 나음을 얻다), 직설법, 과거, 디포넌트, 2인칭, 복수
‘신체적 질병을 넘어 다양한 질병이나 상태로부터 구해내다’, 곧 회복시키다, 치유하다(BDAG).
죄를 상처나 병으로 비유한 표현이다(BDAG).
그리스도의 대리적 고난이 가져다주는 유익(BNTC, ICC, NCBC, NIBC, NIC, TH, TNTC), 곧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NTC).
그리스도의 발자취는 희생과 구속의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심으로, 우리가 죄의 종에서 벗어나 의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분의 채찍 맞음은 우리의 치유를 가져왔고,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의 생명을 구속하셨습니다.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사, 여러분들이 양들처럼 길을 잃고 있었으나, 이제는 여러분들의 영혼의 목자와 감독께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24절에서 언급된 치유가 필요한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γὰρ(가르)가 사용되었다.
“길을 잃었더니”
사, 여러분들이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길을 잃다” – πλανάω(플라나오, 오도하다, 기만하다, 속이다), 분사, 현재, 수동태, 남성, 복수, 주격
“있었으나” –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2인칭, 복수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러나 이제”
회심 이전과 이후의 상태 사이의 대조를 설정한다(EGGNT).
“영혼” – ψυχή(프쉬케, 목숨, 영혼, 생명), 명사, 여성, 복수, 속격
‘다양한 측면의 인간 내면의 삶의 좌소이자 중심’, 곧 영혼(BDAG)
여기서는, 지상을 초월한 생명의 좌소이자 중심(BDAG)
‘사고, 의지, 감정의 측면에서 삶의 본질’(LN)
‘개인의 삶의 근거가 되는 사람이 가진 비물질적인 부분; 모든 심리적인 기능 (마음, 지성, 양심 등)’, 곧 영혼(BSL)
사람은 ψυχή(영혼)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며, 이 하나님께 사람은 “(모든) 영혼을 다해” 헌신해야 한다. 그러므로 ψυχή(영혼)는 “세속을 초월하는 생명의 중심이며 근원”이다. 이런 의미에서 ψυχή는 구원을 받으며(약 1:21; 참조 벧전 1:9; 히 10:39), 죽음에서 건짐을 받고(약 5:20), 동시에 멸망 당할 수도 있다(마 10:28a, b; 16:26a; 막 8:35, 36, 37)(EDNT).
“목자” – ποιμήν(포이멘, 목동, 목자), 명사, 남성, 단수, 대격
‘보호자나 지도자로서 섬기는 사람’, 곧 목자(BDAG)
히 13: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
“감독” – ἐπίσκοπος(에피스코포스, 감독, 관리자), 명사, 남성, 단수, 대격
‘어떤 일이 올바르게 수행되도록 보장하거나 지키는 책임을 가진 자’, 즉 보호자(BDAG)
‘영적인 문제를 돌볼 책임이 있는 사람’, 곧 책임이 있는 사람, 돌보는 사람, 보호자, 지킴이(LN)
‘신자들의 모임을 살피고, 지도하고, 돌보는 책임이 있는 지도자’, 감독(BSL)
“돌아왔느니라” – ἐπιστρέφω(에피스트레포, 돌이키다, 저버리다), 직설법, 과거, 수동태, 2인칭, 복수
‘좋든 나쁘든 마음이나 행동 방침을 바꾸다’ 곧, 돌아서다, 돌아오다(BDAG).
여기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방향을 바꾸다(BDAG).
‘어떤 것을 향한 관심, 주의나 신뢰의 방향을 바꾸다’, 곧 돌리다(BSL).
이 동사는 성경 그리스어에서 ‘회심’을 의미하는 전문적인 용례로 사용된다(TDNT, NIDNTT, EGGNT).
중간태로 해석은 되지만(BNTC, ICC, NIBC, NIC, NTC, TNTC, WBC), 수동태로 회심 과정에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한다(EGGNT).
‘이제’와 함께 사용되는 부정 과거는 영어의 완료 시제와 기능적으로 동일하다(BNTC, NIC, TH, WBC).
과거 우리는 길 잃은 양과 같았지만, 이제 그리스도라는 목자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희생을 본받는다는 것은 나만의 안락함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섬기고 죄와 싸우며 의롭게 살려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불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불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발견합니다. 그분은 고난을 통해 본을 보이셨고, 성품을 드러내셨으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겪는 고난이 무엇이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의 길을 따라갑시다. 욕할 때 침묵하고, 아플 때 하나님께 맡기며, 죄를 멀리하고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자는 결코 길을 잃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영혼의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