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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2026-04-26
본문 고전 11:17-34
설교제목 주의 만찬
  1.  

    주의 만찬에 임하는 바른 자세와 경고(27-34)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 왜 바른 자세가 필요할까요?)

    1. 합당하지 않게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것이다(27-29)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사,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떡을 먹거나 잔을 마시는 자는

“합당하지 않게” – ναξίως(아낙시오스, 합당하지 않게, 수치스럽게), 부사

부적절하거나 부주의한 방식(태도)으로(BDAG)

불명예스러운(TCGELNT)

부적절하게, 부적절한 방식(태도)으로(LN)

18절 이하의 내용을 포함한다(AB, EGT, Herm, HNTC, Ho, NIC, NIC2, TG). 곧,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분열하고, 차별하며, 자기 만찬으로 배를 채우는 태도를 가리키며, 더불어 ‘자기를 살피지 않고(28),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29)’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을 의미한다(LRC).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한 죄가 있게 될 것입니다.

“죄를 짓는” – νοχος(에노코스, 책임이 있는, ~에 메인), 형용사, 남성, 단수, 주격

기본적인 의미는, 갇히거나 제약 받는 것과 관련된, 곧 ~에 종속된, ~의 지배를 받는(BDAG)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어떤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과 관련된, 곧 책임이 있는, 죄가 있는(BDAG)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한 죄(BDAG)

잘못을 저질러 죄책이 있는 상태와 관련된, 곧 죄가 있는, 책임이 있는(LN)

이는 그러한 사람이 그리스도나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을 모독하거나 불경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Ho, ICC, MNTC, TG, TH).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다’는 것은 주님 자신에 대한 죄를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징을 경멸한다는 것은 그 상징이 나타내는 그분 자신을 경멸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EGT, Gdt, ICC, MNTC, NTC).

주의 만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최고의 환대입니다. 그러나 그 환대를 베푸신 주님의 희생(피)을 무시한 채 자기 배만 채우는 것은 주님의 인격과 사역 전체를 모독하는 일이 됩니다.

주님의 몸과 피라는 엄청난 대가가 지불된 식탁이기에, 그 식탁에 참여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마음과 공동체를 향한 태도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준엄한 메시지입니다.

“것이니라” – εμί(에이미, ~이다, 존재하다), 직설법, 미래, 중간태, 3인칭, 단수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사, 그러나 사람이 자기 자신을 시험하고

“살피고” – δοκιμάζω(도키마조, 조사하다, 면밀히 밝히다), 명령법, 현재, 능동태, 3인칭, 단수

‘어떤 것의 진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비판적으로 조사하다’는 확장된 의미로, 시험하다, 검토하다(BDAG).

‘실제 사용을 통해 시험하고 검사함으로써 어떤 것의 진정성을 배우려고 시도하다’는 확장된 의미로, 시험하다, 검사하다, 진정성을 확인하려고 시도하다(LN).

이 단어가 문장 맨 앞에 나와 강조되었다(ICC, Vn). 면밀히 잘 살피라

주의 만찬은 타인이 자격을 심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성령님의 조명 아래서 자신의 신앙과 태도를 엄격하게 점검하고 돌아보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살피는 것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희생과 사랑에 하나됨이 내 안에 있는지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몸과 피)를 받을 준비가 되었는지 영적 정직성을 회복하라는 명령입니다.

'합당하지 않게' 행하는 위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을 살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 반성을 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 안에서 내가 형제를 사랑하며 주님의 죽으심을 진심으로 기념하고 있는지에 대한 영적 정밀 진단입니다.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사, 그렇게 하여 그 떡으로부터 먹고 그 잔으로부터 마시십시오.

“그 떡으로부터…그 잔으로부터”

“~로부터” – κ(에크), 전치사

분리를 나타내는 표시로, ~로부터, ~에서, ~로부터 멀리(BDAG)

주님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온 몸을 상징하는 빵을 먹고, 주님의 피에서 분리되어 나온 피를 상징하는 잔을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주의 몸과 잔에 참여하는 것을 뜻합니다.

(왜 자기를 살핀 후에 떡과 잔을 받아야 할까요?)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사, 몸을 분별하지(인지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먹고 마시기 때문입니다.

“때문입니다”

‘자신을 살피라’는 명령의 근거를 나타낸다(Ed, Gdt, HNTC, Ho, Lns, NCBC, NIC2, NTC, TH).

“자기의 죄”

“죄” – κρίμα(크리마, 심판, 유죄 선고), 명사, 중성, 단수, 대격, 유죄 판결(정죄)

판사가 내린 법적 판결로, 유죄 판결과 때로는 그에 따른 처벌 자체를 의미한다(BDAG).

유죄 판결(BDAG)

형사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는 법적 결정(종종 그에 따른 처벌이 수반된다), 곧 유죄 판결(정죄)(LN)

“주의 몸”

주의 몸은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십자가에 달린 주의 몸과 주의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가 상징하는 십자가에 바쳐진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를 위한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였다는 것을 올바로 판단하여 깨닫지 못하고 성찬식에 참여하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 바쳐진 주의 “몸”으로 말미암아 종말의,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주의 “몸”, 즉 교회가 생성되었다(김세윤).

“분별하다” – διακρίνω(디아크리노, 분별하다, 의심하다, 비난하다), 분사, 현재, 능동태, 남성, 단수, 주격

‘주의 깊게 평가하다’는 확장된 의미로, 평가하다, 판단하다(BDAG).

여기서는 올바르게 판단하다, 곧 인지하다(알아보다)(BDAG).

‘차이를 인식하거나 지각하여 평가하다’는 확장된 의미로, 분별하여 평가하다(BSL).

그것은 그가 먹는 빵에서 주님의 몸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Alf, EGT, Gdt, HNTC, Ho, ICC, Lns, MNTC, NTC, Rb, TG, TH, TNTC, Vn)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빵을 떼면서도 그것이 나를 위해 찢기신 주님의 살임을 깨닫지 못한 '영적 무지'를 뜻합니다. 동시에, 내 옆에 있는 가난한 형제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임을 알아보지 못한 '공동체적 무감각'을 뜻합니다.

형제를 소외시키면서 주님의 몸인 빵을 먹는 것은 지독한 모순이며, 이것이 바로 '분별없음'의 실체입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떡과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합당하지 않게”란 완전하지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회개 없는 태도와 사랑 없는 참여, 분열을 방치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성찬에 참여하라고 말합니다. 성찬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을 점검하는 자리입니다. 또한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몸과 교회 된 공동체를 함께 무시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주의 만찬을 앞두고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나는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어떤 교만으로 형제를 판단하고 있습니까? 주의 만찬은 완전한 사람을 위한 식탁이 아니라, 회개하며 나아오는 사람을 위한 식탁입니다.

(잘못된 자세로 주의 만찬에 참여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1. 주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30)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사, 이 때문에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들이 약하고 병들고 꽤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 이 때문에

29절에서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신 것에 대한 심판의 결과를 나타낸다(AB, Alf, Ed, EGT, Ho, ICC, NIC, NIC2, NTC, TG, TH).

“약한 자” – σθενής(앗떼네스, 약한, 아픈, 병든), 형용사, 남성, 복수, 주격, 약하고

기본적인 의미는 힘이 부족한 상태, 곧 약한, 무력한(BDAG)

쇠약하게 하는 병으로 고통받는 것과 관련된, 곧 아픈, 병든(BDAG)

어떤 것에 대한 능력이 부족한, 곧 약한(TCGELNT)

신체적으로 약한 것과 관련된, 곧 약한(LN)

정상적인 신체적 또는 정신적 기능의 장애로 영향을 받는, 곧 병든(BSL)

“병든 자” – ρρωστος(아르로스토스, 병든), 형용사, 남성, 복수, 주격

병든, 아픈(BDAG)

무력한 상태로 아프거나 병든 상태, 곧 아픈, 병든(LN)

‘약한 자와 병든 자’는 사실상 동의어이다(Lns, My, NIC).

“잠든 자도” – κοιμάω(코이마오, 자다, 잠들다), 직설법, 현재, 수동태, 3인칭, 복수

잠들다, 죽다, 세상을 떠나다(BDAG).

“적지 아니하니” – κανός(히카노스), 형용사, 남성, 복수, 주격

비교적 많은 수로, 다수, 꽤 많은(BDAG)

‘약한 자, 병든 자, 잠자는 자’는 모두 육체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Alf, EGT, Gdt, HNTC, Ho, ICC, Lns, NIC2, TH, TNTC, Vn).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17)’ 말이 단순한 수사적 비유가 아니라 실제적인 비극이었음을 확증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찬을 통해 생명을 얻어야 했으나, 분별력을 잃음으로써 오히려 약함과 병듦과 죽음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징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1. 징계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은혜이다(31-32)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사,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있었다면, 우리가 심판(정죄)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폈으면” – διακρίνω(디아크리노, 분별하다, 의심하다, 비난하다),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1인칭, 복수

‘주의 깊게 평가하다’는 확장된 의미로, 평가하다, 판단하다(BDAG).

여기서는 올바르게 판단하다(BDAG).

“판단을 받지” – κρίνω(크리노, 판단하다, 비판하다, 판결을 내리다), 직설법, 미완료, 수동태, 1인칭, 복수

사법 절차에 참여하다, 판결하다, 결정하다, 법정에 소환하다, 정죄하다, 또한 사법적 처벌을 위해 넘기다(BDAG).

여기서는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내리는 일시적 형벌(BDAG)

판단하다, 심판을 내리다, 정죄하다(TCGELNT).

사람을 유죄로 판단하고 처벌받을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다, 곧 유죄로 판단하다, 정죄하다(LN).

여기서 ‘판단 받은 것’은 약하고, 병들고, 잠든 것을 가리킵니다.

고린도인들이 자신을 살피지 않고 있으며 그들이 심판을 받고 있음을 암시한다(AB, Alf, Ed, Lns, NIC, NIC2, NTC, Rb).

바울이 제시하는 법정 장면에서, 복음을 거절한 자들이 받을 미래의 심판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 백성의 일원이 되는 신비한 특권 중 하나는 현재 미리 심판을 받아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이 현재 신자들을 심판하실 때, 그 결과는 징계이다(톰 라이트).

성도가 스스로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자신을 살피는 행위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고 분별할 때, 하나님은 굳이 외부적인 징계를 통해 우리를 깨우치실 필요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사, 그러나 주님에 의하여 유죄 판결을 받을 때 우리가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에 의하여”

“의하여”

행위자나 원인의 표시로, ~에 의하여(BDAG)

“판단을 받는 것은”

사, 유죄 판결(심판, 정죄)을 받을 때

31절 참조

“징계를 받는 것이니” – παιδεύω(파이듀오, 교육하다, 훈련하다, 가르치다), 직설법, 현재, 수동태, 1인칭, 복수

개인이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다, 곧 훈련을 실천하다(BDAG).

훈육과 처벌, 주로 신성한 훈육에 관 것(BDAG)

(하나님께)징계(훈육)을 받다(BDAG).

교정적 측면에 중점을 두어, 징계하다(훈육하다)(TCGELNT).

행동 개선의 목적으로 벌하다, 곧 벌하다(LN).

어떤 행동으로 이끌기 위해 고통, 수치, 제한, 손실 등으로 징계를 받는 대상이 되다, 곧 훈육 받다(BSL).

여기서의 심판의 본질은 앞에서 언급한 약하고 병들어 죽는 상태를 가리키며(Lns), 이는 징계적이며 영원한 정죄가 아니다(AB, Lns, NIC, NTC).

그러나 징계의 궁극적인 목적은 '보호'에 있습니다.

세상은 회개할 기회 없이 마지막 날에 한꺼번에 '정죄'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 땅에서 미리 '징계'를 받음으로써, 그 마지막 파멸의 자리에 서지 않도록 연단 받습니다.

따라서 성도에게 임하는 고난과 징계는, 그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있다는 강력한 인장입니다.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사, 이는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세상”

믿지 않는 인류를 가리킨다(Alf, Gdt, HNTC, Ho, Lns, NIC, NTC, TG, Vn).

“정죄함을 받다” – κατακρίνω(카타크리노, 정죄하다, 고발하다), 가정법, 과거, 수동태, 1인칭, 복수

죄의 확정 후 판결을 내리다, 곧 판결을 내리다(BDAG).

세상과 함께 판결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BDAG).

판결을 내리다, 정죄하다(TCGELNT).

누군가를 확실히 유죄로 판단하여 처벌을 받게 하다, 곧 유죄를 선고하다, 유죄 판결을 내리다, 정죄하다(LN).

고린도 교회의 질병과 죽음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자녀'로 대우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히 12:7-8 참조).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성찬을 모독하며 영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아픈 매를 들어서라도 그들을 돌이키게 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혹 나의 허물로 인한 '징계'일지라도, 그것은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분노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긴급 구조 작업'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잠자는 자가 많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의 만찬에 대한 모독이 실제적인 징계를 불러왔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징계의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시려는 주님의 징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 훈련하십니다.

우리 삶에 영적 메마름과 예배의 무감각함이 있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징계는 버리심의 표지가 아니라 자녀 삼으심의 표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망보다 회개와 순종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1. 그러므로 주의 만찬은 서로 기다리며 함께 참여해야 한다(33-34)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그런즉”

앞의 모든 논의를 종합하여 내리는 실천적 결론이다(NIC, NIC2, TH, TNTC).

“내 형제들아”

책망의 문맥 가운데서도 바울은 여전히 그들을 형제들로 부릅니다.

이 표현은 바울의 권면이 단지 냉정한 정죄가 아니라, 교회를 향한 목회적 사랑과 회복의 의도 안에서 주어진 것임을 보여 줍니다.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기다리라’ 이 단어는 단순히 시간적으로 늦은 사람을 기다린다는 뜻만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 참여하도록 받아들이고 배려하는 태도를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의 핵심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랑과 하나 됨입니다.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 명령은 단순한 실용적 조언이 아닙니다. 바울의 지시는 “배고픔을 채우는 것과 공동체 식사의 구분”을 목표로 한다. 주의 만찬의 초점이 개인의 배고픔 해결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의 선포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반영한다(LRC).

주의 만찬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라 주님과 연합하는 '교제'입니다. 육체적 본능에 사로잡혀 형제를 돌아보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차라리 집에서 배를 채우고 교회에 와서는 영적인 연합에만 집중하라는 엄중한 권면입니다.

“판단 받는 모임” – κρίμα(크리마, 심판, 유죄 선고), 명사, 중성, 단수, 대격, 유죄 판결(정죄)

판사가 내린 법적 판결, 곧 사법적 평결, 주로 불리한 의미로, 유죄 판결과 때로는 그에 따른 처벌 자체를 의미한다(BDAG).

유죄 판결(BDAG)

형사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는 법적 결정(종종 그에 따른 처벌이 수반된다), 곧 유죄 판결(정죄)(LN)

‘심판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바울의 모든 권면이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보호막이었음을 드러냅니다.

바울이 엄격한 규칙을 제시하는 이유는 성도들을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무질서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바로잡으리라” – διατάσσω(디아탓소, 처리하다, 정하다, 지시하다, 명령하다), 직설법, 미래, 중간태, 1인칭, 단수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지시를 내리다, 곧 명령하다(BDAG).

나머지는 내가 갈 때에 처리하겠습니다(BDAG).

바울은 마지막으로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 명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늦게 오는 사람을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라, 누구도 배제하지 말고 함께 참여하라는 뜻입니다.

또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라고 말합니다. 성찬은 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주님을 기억하고 공동체의 하나 됨을 드러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기다리는 교회”입니다. 느린 사람, 약한 사람, 상처 입은 사람, 신앙이 어린 사람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 만찬의 정신은 서두름이 아니라 배려이며, 경쟁이 아니라 환대입니다.

  1. 결론

오늘 우리는 고린도 교회의 아픈 현실을 통해 주의 만찬의 본질을 돌아보았습니다. 주의 만찬은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과 흘리신 피를 기억하는 새 언약의 식탁이며, 교회가 한 몸임을 드러내는 공동체의 식탁이고,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복음의 식탁입니다.

그러므로 분열과 차별과 자기중심성은 주의 만찬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형제를 외면하면서 떡을 받는 것은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는 일이며, 공동체를 찢으면서 잔을 마시는 것은 새 언약의 피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정말 나를 기억하고 있느냐? 너는 정말 내 몸을 분별하고 있느냐? 너는 정말 형제와 함께 이 식탁에 앉고 있느냐?”

우리는 자신을 살피고 회개하며 다시 주님의 식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기 만찬을 버리고 주의 만찬으로, 차별의 식탁을 버리고 은혜의 식탁으로, 분열의 모임을 버리고 한 몸의 모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차려 놓으신 그 식탁 앞에서 우리 모두가 자신을 낮추고, 형제를 품고, 십자가를 기억하며, 한 몸으로 서는 은혜 가운데 서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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