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 안의 많은 지체(다양성을 통한 몸의 통일성)
고전 12:12-31
서론:
사람의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눈, 손, 발, 귀, 심장, 폐와 같은 지체들은 모양도 다르고 기능도 다르지만, 한 몸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몸 전체가 눈이라면 볼 수는 있어도 들을 수 없고, 몸 전체가 귀라면 들을 수는 있어도 걸을 수도, 잡을 수도 없습니다. 몸은 다양한 지체들이 각자의 역할을 감당할 때 건강하게 기능합니다.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교회는 같은 성격, 같은 은사, 같은 역할을 가진 사람들만 모인 획일적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다른 배경, 은사, 성격, 역할을 가진 성도들을 한 몸 안에 두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하나됨은 차이를 없애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다른 지체들이 함께 연결되고, 서로를 필요로 하며, 사랑으로 섬길 때 참된 하나됨이 드러납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은사를 자랑했고,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은사 때문에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눈에 띄는 은사를 더 중요하게 여겼고, 어떤 사람은 조용히 섬기는 지체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런 교회를 향해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교회가 무엇인지, 성도가 누구인지,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성도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그리고 은사는 나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몸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한 몸의 기초(12-14)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몸” – σῶμα(소마, 몸), 명사, 중성, 단수, 주격
‘몸’이란 단어가 두 번 반복되는 것은 한 몸 안에 있는 부분들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Alf, ICC).
“하나, 많은”
이런 단어의 반복은 고린도인들이 당파를 형성하고 은사에 집중하는 경향과 대조적으로 성령의 사역의 범위를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EGT).
몸의 본질은 다양성을 통한 통일성입니다. 이 다양성은 결코 분열이 아닌 유기적 연합을 이룹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니라”
사,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문입니다” – γάρ(가르, 왜냐하면, ~때문에), 논리적 설명 접속사
사건들 사이의 원인이나 이유를 나태는 접속사, 곧 ~때문에, 왜냐하면(LN)
이는 12:4–11의 요점에 대한 근거를 나타내며, 다양한 은사가 있으나 한 성령이 계심을 의미한다(Lns, NIC2).
바울은 이제 비유를 통해 교회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AB, Alf, Ed, EGT, Herm, HNTC, Ho, ICC, NCBC, NIC, NIC2, NTC, Rb, TG, TNTC, Vn),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다(AB, ALF, EGT, NTC, Rb, TNTC).
이 문구의 핵심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기적 연합을 나타냅니다.
이는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다양성 속의 통일성
둘째, 상호 의존성
셋째, 그리스도의 주권
교회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교회의 하나됨은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다양성은 하나됨을 깨뜨리지 않고, 하나됨은 다양성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많은 사람이 하나가 됨을 강조하고, 영 안에서의 그들의 공동체 생활을 고려할 때 인종과 사회적 지위의 구별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NIC2). 또한 지체들이 얼마나 다양하며 몸의 일치가 얼마나 긴밀한지를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ICC).
배경, 율법, 문화, 종교적 정체성이 달랐지만, 복음 안에서는 모두 한 몸에 속하게 됩니다.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골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성령’이라는 표현은 교회의 하나됨이 인간적 합의나 조직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서 비롯됨을 보여 줍니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성령 안에서, 성령과 함께, 또는 성령에 의해 행해지는 침례를 가리킨다(Ho, MNTC, NCBC, NIC2, NTC, Rb, TNTC).
이것은 우리가 성령을 받았을 때, 즉 회심 시에 일어났다(NIC2).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침례를 받았습니다.
성령 침례는 성령께서 신자를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 된 교회에 연합시키시는 구원 사건을 가리킵니다.
“한 몸이 되었고”
성령 침례를 통해 모든 신자가 한 몸으로 결합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교회를 돌보시기 위해 필요에 따라 주권적으로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교회 공동체의 근본적 일치는 성령님의 역사에 기초합니다.
성령 침례는 신자를 고립된 개인으로 남겨 두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가 되게 합니다.
“마시게 하셨느니라” – ποτίζω(포티조, 마실 것을 주다, 물주다), 직설법, 과거, 수동태, 1인칭, 복수, 마시게 하다
사, 마시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12절 참조
‘한 영 안에서 한 몸으로 침례를 받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리킵니다(EGT, HNTC, ICC, Lns, MNTC, NIC, NIC2, Rb, TNTC).
이는 성령을 외적으로만 접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음료처럼 내적으로 받아 누리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때문입니다”
‘몸은 하나다(12)’라는 말씀을 설명한다. 이는 고린도인들이 성령의 공동체적 체험으로 하나로 연합되었기 때문이다(NIC2).
교회의 하나됨은 단지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윤리적 권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미 이루신 구원론적 현실입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을 언급함으로써 당시 가장 깊은 분리의 선들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사람의 궁극적 정체성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모든 신자는 동일하게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에 속했고, 동일하게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신자를 민족과 신분의 차이를 넘어 그리스도의 한 몸 안으로 연합 시키십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인간의 취향이나 조건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새 언약 공동체입니다.
교회 안의 하나됨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하는 은혜입니다.
나의 정체성은 세상적 구분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공동체적 사람입니다.
은사는 비교의 도구가 아니라 연합의 도구입니다.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여럿이니”
사, 여럿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입니다”
13절에서 그와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다(12)의 진술에 추가적인 이유를 더한다(NIC).
그리스도도 그러하다 … 몸은 한 부분이 아니라 여러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몸의 연합과 다양성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나타낸다(ICC).
“지체” – μέλος(멜로, 지체, 부분, 구성원), 명사, 중성, 단수, 주격
인체의 일부, 곧 구성원, 부분, 팔다리(BDAG)
단위의 구성원으로서의 부분, 곧 구성원(LN)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한 지체로 이루어진 획일적 공동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들이 함께 연합한 유기적 공동체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하나됨은 획일성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다양성입니다.
나는 혼자서 몸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서로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인간의 취향이나 조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루신 구원론적 현실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모두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새 언약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몸의 비유를 통해 교회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많은 지체가 있지만 한 몸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하나됨이 획일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합된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적 구분에서 찾지 말아야 합니다. 출신, 배경, 신분, 성격, 은사의 차이가 우리의 궁극적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 안에서 한 몸에 속한 지체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람입니다.
- 다양성의 필요성(15-20)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발과 손’, ‘귀와 눈(16)’ 이것의 초점은 각각의 상대적 가치에 있다. 즉, 발과 귀는 각각 손과 눈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이다(AB, Ed, EGT, Gdt, Ho, ICC, MNTC, NIC, NTC, TNTC, Vn). 바울은 지체들이 자신의 역할이나 은사에 불만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Ed, Ho, ICC, My, Vn).
15, 16절은 각 은사의 필수성의 개념을 나타낸다. 마치 그 부분들이(발, 손, 눈, 귀) 몸에 필수적인 것처럼, 은사들도 교회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NCBC).
이 두 구절은 질문이 아니라 진술로 받아들여야 한다(AB, EGT, Herm, HNTC, ICC, Lns, MNTC, My, NIC2, NTC, Rb, TG, TNTC).
성도는 다른 지체와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소속과 가치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교회 안에서 나의 역할이 다른 사람과 다르거나 덜 눈에 띄어도, 나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필요한 지체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섬김도 하나님 앞에서 귀합니다.
교회 안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부르심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맡겨진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이러한 중복(15절)은 그 요점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Lns).
바울의 요점은 몸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모든 지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AB, NIC2, TNT).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몸은 다양성을 당연하게 여긴다(Ed, MNTC). 몸은 다양한 기능을 가진 부분들의 결합을 필요로 한다(Ho).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이 질문들은 수사적 질문들이다(NIC2, TG).
성도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자신의 소속과 필요성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귀가 눈이 아니어도 몸에 속한 것처럼, 성도는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과 달라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에 꼭 필요한 지체입니다.
다른 사람의 은사와 나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나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입니다.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두셨으니” – τίθημι(티떼미, 두다, 놓다), 직설법, 과거, 중간태, 3인칭, 단수
특정한 임무, 기능 또는 역할에 누군가를 배정하다, 곧 임명하다, 지정하다, 할당하다, 임무를 주다(LN).
어떤 사람에게 의무, 책임, 책무를 부과하다, 곧 임명하다(의무)(BSL).
‘원하시는 대로, 두셨으니’는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ICC, Lns, NIC, NTC, TNTC, Vn).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각 성도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 두시고, 각자에게 필요한 자리와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 안의 나의 자리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배치이며, 나의 역할은 몸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나의 자리를 우연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자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비교보다 충성을 선택해야 합니다.
교회의 다양성을 하나님의 지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수사적 질문이다(EGT, Herm, ICC, NIC2, NIGTC, NTC, TG, TH, TNTC).
몸의 존재를 위해서는 다양한 지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Ed, EGT, Herm, Ho, ICC, NIC2, TG, TNTC).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바울은 몸의 다양성에 반대되는 몸의 연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Herm, NIC2, TNTC).
19, 20절에서 몸의 본질은 다양성과 통일성입니다.
교회는 한 종류의 지체만으로 이루어진 획일적 공동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입니다. 다시 말해, 다양성이 없으면 몸은 성립하지 않고, 하나됨이 없으면 지체들은 흩어진 조각이 됩니다.
교회의 다양성을 불편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받아야 합니다.
모두가 나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됨을 위해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소속과 가치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발이 손이 아니라고 해서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귀가 눈이 아니라고 해서 몸에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자신에게 다른 사람과 같은 은사가 없다고 해서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체를 그 원하시는 대로 몸에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나의 자리는 우연이 아닙니다. 나의 은사와 역할은 하나님의 주권적 배치 안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또한 몸은 한 지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눈이라면 몸은 몸일 수 없고, 모두가 손이라면 몸은 온전하게 기능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다양성은 불편한 요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다양성이 없으면 몸은 성립하지 않고, 하나됨이 없으면 지체들은 흩어진 조각이 됩니다.
